무엇을 고쳐야 할지는 날려봐야 알 수 있다

무엇을 고쳐야 할지는 날려봐야 알 수 있다

첫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약 한 달간의 여정 동안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한 문장은, 워싱턴 D.C. 스페이스 뮤지엄에서 마주한 라이트 형제의 문구였다.

“완벽한 안전을 추구한다면, 울타리에 앉아 새들을 구경하는 게 나을 겁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배우고 싶다면, 기계에 올라타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요령을 익혀야 합니다.”

라이트 형제의 배경이나 학벌은 특별할 것 없었다. 하지만 ‘날고 싶다’는 꿈을 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직접 만들고, 날려보고, 부서지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이걸 보면서 라이트 형제야말로 스타트업이 본받아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첫 비행기를 2주 만에 만들어냈다. (비행기도 2주면 되는데 스타트업 제품은 훨씬 더 빠르게 만들어야 하지 않나?)

이번 미국 출장을 결정한 이유도, 직접 그 시장에 부딪혀보지 않고서는 글로벌 진출을 위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끝까지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많이 넘어지면서 배웠고, 또 발전시켜 나갔다. 오늘은 미국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운 3가지를 정리해봤다.


1. 경쟁사를 통해 시장 이해하기

미국에서의 첫발은 입찰 산업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 입찰 전문가 협회(APMP) 주최의 컨퍼런스였다. 우리에게 APMP 컨퍼런스는 살아 있는 교과서와 같았다. 수많은 경쟁사를 직접 만나고 그들의 서비스를 체험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RFP 자동화와 제안서 작성 솔루션”들이었다. AutogenAI, Responsive, Pwin 같은 회사들은 제안서 작성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AutogenAI는 사용자 경험이 아쉬웠고, Responsive는 정확도 문제로 고객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반면 Pwin은 CEO가 직접 고객 지원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모습으로 높은 만족도를 끌어내고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단순히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고객과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시장 정보와 데이터를 분석하는 솔루션”들이 눈에 들어왔다. DeltekGovWin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가진 전통의 강자도 있었지만, 투박하고 낡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업계 전반에는 “투박하더라도 데이터가 많고 훌륭하니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반면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GovSignal은 탄탄한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기반으로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들 AI를 내세우는 뻔한 경쟁 속에서, 데이터의 본질에 집중하는 그들의 태도는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미국 시장은 이미 수많은 플레이어가 각축을 벌이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하지만 직접 부딪히며 그들의 장단점을 체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쟁자만 바라보지 않고 현장 고객들의 생각까지 함께 들으니, 우리가 집중해야 할 Sweet Spot—고객은 원하는데 경쟁자가 갖추지 못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솔루션이 RFP 이후의 ‘실행’ 단계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 또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많은 잠재 고객들은 오히려 Pre-RFP, 즉 ‘시장 진입(Market Identification)’과 ‘사전 영업(Capture)’ 단계를 도와주는 솔루션을 필요로 했다. 이때 우리는 첫 번째 ‘AHA 모먼트’를 맞이했다.


2. 고객 피드백을 통한 빠른 피벗

우리는 한국 사무실에서 내부 가설로 만든 ‘비드 리포트(Bid Report)’ 서비스를 들고 미국 고객을 만났다. 하지만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다들 “좋네요”라고 말했지만, 그뿐이었다. 후속 미팅이나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피드백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APMP 행사를 마친 후, 워싱턴 D.C. 에어비앤비 거실에서 열린 긴급 회의

우리는 빠르게 피벗을 결정했다. 더는 비드 리포트를 하지 않기로. 그 이유는 명확했다.

고객 반응이 없었다는 것 자체가 피드백이었다.

그럼 무엇으로 피벗할까? 바로 고객이 가장 원했던 Pre-RFP(사전 영업) 솔루션이었다. 경쟁자들이 실행 단계에 몰려 있어서 피한 것이 아니라, 그들도 풀기 어렵다고 여겼던 더 큰 문제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큰 문제를 풀기 위해선 한 달짜리 출장으론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 기획, 하루 개발—단 이틀 만에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만들었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2주 만에 날렸다면, AI 시대의 우리는 이틀이면 충분했다.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팀워크”였다. 함께 미국에 간 Growth 담당 원준님, Product 담당 예련님과 나는 마치 클라이원트 안의 또 하나의 작은 스타트업 같았다.

  • 원준님은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 같았다. 누구든 편하게 말을 걸고 친구가 되어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 예련님은 인생 2회 차처럼 행동하는 개발자였다. ML 엔지니어임에도 프론트, 백엔드 가리지 않고 모두 해냈다.

이런 팀워크 덕분에 첫 번째 피벗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3. 제품 없이 첫 고객 만들기

이틀 만에 만든 MVP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고객을 만나자.”

방법은 두 가지로 좁혀졌다.

1/ 온라인 접근 (주로 LinkedIn)
이전의 비드 리포트는 미팅 하나 잡기도 어려웠지만, 이번 MVP는 Pre-RFP Capture에 특화되어 있었기에 반응이 전혀 달랐다. 하루 스케줄이 꽉 찰 정도로 미팅이 잡히기 시작했다. 고객들은 “내가 원했던 사전 영업 도구가 없었는데, 그걸 만드는 스타트업이라니! 어떻게 솔루션화했는지 보자”고 미팅에 응했다.

MVP 이후, 우리는 3주간 40건 이상의 미팅을 진행했다.

2/ 오프라인 접근 (WeWork 등 직접 만남)
특히 인상 깊었던 활동은 각종 위워크를 돌며 무작정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 원준님은 위워크에서 탁구 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정부 입찰 하시나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경쟁사의 영업 에이전시와 연결될 수 있었다.
  • 나는 위워크에서 백인 여성분이 Government Contract 관련 전화를 하는 걸 듣고, 바로 말을 걸어 미팅을 성사시켰다. 알고 보니 그 남편이 바로 내 뒷자리에서 일하고 있었고, 우리는 즉석에서 솔루션 설명까지 진행했다.

이렇게 MVP 없이도 고객을 발굴하는 법을 익혔다.

출장 마지막 2주, 우리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만불 이상의 서비스를 계약하기 위해서는 리드 타임도, 정확도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확률이 높은 단 한 명의 고객에게만 맞춤형으로 고도화된 제품을 제공하기로 했다.

“One shot, one opportunity.” 우리는 그 한 명의 고객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고, 결국 계약을 따냈다.

제품은 아직 미완성이었지만, 고객은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산다는 걸 알게 됐다.


정리하며

  1. 경쟁사를 통한 시장 이해
  2. 고객 피드백을 통한 피벗
  3. 제품 없이 첫 고객 만들기

이 모든 것은 직접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예비 창업 시절부터 외치던 “세계 정복”이란 꿈은, 어쩌면 라이트 형제의 “날고 싶다”는 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허황되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진심이고, 실제로 도전하고 있다.

“단순히 뜨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제어(Control)가 핵심이다.” – 라이트 형제

지금 우리는 겨우 날개를 펼쳤을 뿐이다. 진짜 이륙하고 안정적으로 비행하려면,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가장 중요한 과제다.

고객 확보는 충분하지 않다.
고객 만족이 핵심이다.

🇺🇸 미국 출장 한 달! 그 생생한 인사이트를 담은 컨퍼런스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7월 2일(수) 13:00–18:30
📍 서울 강남 아모리스 역삼
🎤 김용기 · 조준호 · 홍미선 · 류재언 · Mitsuhiro Seto · 이금룡